눈물 없이 볼 수 없다는 말, 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는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4년 개봉해 1,4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은, 단순히 잘 만든 상업 영화를 넘어 대한민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한 세대 전체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작품입니다. 어릴 적 제가 살던 시골 동네에서 봤던,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서 돌아온 친구 아버지의 그을린 얼굴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겹쳐 보였습니다.

흥남철수부터 파독광부까지, 역사가 한 사람을 어떻게 짓누르는가
일반적으로 전쟁 영화는 총과 전투 장면으로 압도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국제시장>이 가슴을 치는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무거운 장면은 총성이 아니라, 어린 덕수가 피란선 위에서 여동생 막순이의 손을 놓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긴 한마디 — "이제 네가 가장이다" — 이 짧은 유언이 한 남자의 평생을 통째로 바꿔버립니다.
영화의 출발점이 되는 '흥남철수'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실제로 벌어진 역사적 철수 작전입니다. 여기서 흥남철수란, 중공군의 대규모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유엔군과 피란민 약 10만 명이 흥남항을 통해 남쪽으로 탈출한 사건을 말합니다. 영화는 이 압도적인 역사의 현장을 덕수 한 사람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데, 그 앵글이 오히려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이후 덕수는 동생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독광부'로 독일에 갑니다. 파독광부란 1960~70년대 대한민국 정부가 서독과 체결한 노동력 수출 협정에 따라 탄광 노동자로 파견된 한국인 남성들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외화를 벌기 위해 지하 수백 미터 막장(갱도의 막다른 끝부분, 가장 위험하고 열악한 작업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일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제 친구 아버지가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돌아오셨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세대는 달라도, 가족을 위해 몸을 갈아 넣은 방식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영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독일에서 간호사 영자를 만나 가정을 꾼 뒤, 이번엔 여동생 결혼 자금을 마련하고 가게 '꽃분이네'를 지키기 위해 베트남 전쟁의 기술 근로자로 자원합니다. 여기서 '기술 근로자'란 전투병이 아닌 민간 기술 인력으로 파견된 사람들을 가리키지만, 전장 한복판에서 일한다는 사실은 전투병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덕수의 선택은 매번 자신을 위한 것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설정이 다소 과장됐다고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면 제 친구 아버지도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과장이 아니라 실화였던 겁니다.
- 흥남철수(1950): 한국전쟁 최대 피란 작전, 피란민 약 10만 명이 흥남항을 통해 탈출
- 파독광부(1960~70년대): 서독과의 협정으로 파견된 한국인 탄광 노동자, 외화 획득의 최전선
- 베트남 기술 근로자(1960~70년대): 전장 속 민간 파견 인력, 위험 수당을 받으며 생사를 오간 이들
- 파독 간호사: 파독광부와 함께 독일에 파견된 한국인 여성 간호사 집단, 영화 속 영자가 이 역할을 대변
"아버지, 저 잘 살았지요?" — 이산가족 장면이 지금도 눈가를 적시는 이유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신파'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감정을 억지로 쥐어짠다는 지적인데, 저는 그 말에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억지 눈물과 진짜 눈물은 느낌이 다릅니다. 억지로 짜낸 눈물은 영화관을 나서면 금방 잊히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TV에서 다시 보면 어김없이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후반부의 핵심은 1983년 KBS에서 방영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특별생방송을 재현한 에피소드입니다. 이산가족(離散家族)이란 전쟁이나 분단으로 인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138일간 방영되며 총 10만 952건의 이산가족 신청을 받았고, 이 중 5만 3,536건의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출처: KBS 공식 자료) 저는 중고등학생 시절에 이 프로그램을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 기억이 불현듯 살아났습니다.
덕수가 화면을 통해 막순이와 재회하는 장면, 말이 통하지 않아도 피붙이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오열하는 그 장면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어차피 재회하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나서 제 눈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이 장면이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로 당시 대한민국 전역이 함께 울었던 역사적 사건을 재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백발의 덕수가 아버지 영정 앞에서 혼잣말을 건네는 장면. "아버지, 저 이만하면 잘 살았지요? 진짜 힘들었거든요." 이 대사가 오래 남는 이유는 화려하거나 극적이어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꿈이었던 선장의 꿈을 단 한 번도 펼치지 못한 채, 오직 가족과의 약속 하나로 버텨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 아버지도 아마 그 말이 하고 싶으셨을 겁니다. 사우디에서 돌아와 술 한 잔으로 고단함을 달래시던 그 모습이, 덕수의 마지막 장면과 포개졌습니다.
한 가지 솔직하게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영화가 현대사의 정치적·사회적 맥락을 과감히 생략했다는 점입니다. 파독광부가 한국의 경제 개발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베트남 파병의 역사적 논란은 무엇인지 같은 부분은 영화 안에 없습니다. 그 점은 아쉽습니다. 그러나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오히려 영화가 오래 살아남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보는 사람 각자가 자신의 아버지, 자신의 가족을 그 자리에 대입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 6.25를 방불케 하는 장면들이 낯선 나라 이름과 함께 흘러나옵니다. <국제시장>을 다시 볼 때마다 저는 그 장면들이 겹쳐 보여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누군가에겐 지금이 바로 덕수가 살았던 그 시절인 겁니다.
이 영화가 1,400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 모은 힘은 화려한 CG나 스타 캐스팅만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부모님, 혹은 친구의 아버지가 살아낸 삶이 스크린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말, OTT에서 <국제시장>을 틀어놓고 그 옆에 부모님을 한번 앉혀 보시길 권합니다. 말 한마디 없이 같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사가 될 수 있습니다.